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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공관소식

근데, 밥은 먹었니?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 형사(송강호)가 유력한 용의자(박해일)에게 묻는다. '근데, 밥은 먹고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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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대사인지는 모르겠다. 저 장면을 보면서 난,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가끔 나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늘어 놓으신다. 그저 딸이니까 몇마디 늘어놓고 싶으실 때가 있으실 것이다. 그럴때 난 그냥 아무말 없이 듣기만 하면 간단한 것인데, 왜 그렇게 성격이 꼬였는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엄마의 말을 가로 막곤 한다. 엄마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더라도, 가끔은 딸이라는 이유로만으로도 아무말 없이 받아줄 수 있는 착한마음이 필요한 법. 잘 알면서도 늘 마음만 그럴 뿐, 늘 여지없이 엄마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 얘기를 잘 듣고, 싫은 소리도 어지간하면 안하고, 마음에 없는 말도 곧 잘 하는 내가, 집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알면서도 바꾸지 않고 있기에 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겠지만, 솔직히 앞으로 어찌어찌하겠다는 자신이 서진 않는다.

이런 못된 딸이 저녁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는 뭐 그리 중요하다고! 하소연을 하려다 더 속상해지는 우리 엄마는 물었던 말을 또 묻는다. "근데, 저녁은 먹었니?"

새벽 3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가도 엄마의 첫 질문은 항상 똑같다. 정말 밥을 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겠지만, 딸과의 대화가 또한 그립다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떨어져 살고있는 요즘도 우리 엄마는 가끔 만날 때도, 전화를 통해서도 여전히 같은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신다. 어디 우리 엄마만 그러겠는가.


영진공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