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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아는 사람

아는 사람


"아이고, 송부장님, 반갑습니다. 제가 이대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더운데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어떻게, 회의실로 자리를 옮길까요?"

"아, 아닙니다. 다른 분들 일하시는데 방해가 안 된다면 저야 괜찮습니다."

"방해는요. 신경쓰지 마세요. 사실은 회의실 에어컨이 고장 났어요. 여기 있는 게 시원할 겁니다, 허허."

"에어컨이 고장났습니까? 제 친구의 동생이 엘지 서비스센터를 다니는데. 어디 제품인가요?"

"아, 그렇잖아도 서비스센터에 전화해 놨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부장님, 고향이 어디십니까?"

"난 서울 사람입니다."

"서울이 고향이시군요. 서울 어느 동에 사셨습니까?"

"한남동에서 나고 자랐지요."

"용산구 한남동이요. 부근에 이태원이 있고 보광동이 있지요. 거기에 오산고등학교라고 있습니다만."

"맞아요. 제가 거기 나왔어요."

"아, 그러십니까? 거긴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지 않습니까? 제 대학 동기가 오산중을 나왔습니다. 그 친구가 부장님 후배가 되겠네요."

"아, 아니에요. 난 중학교는 장충중을 다녔어요."

"그렇습니까. 장충중학교요. 저기 약수동에 있는 학교 말씀하시는 거죠? 거기도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는 걸로 압니다. 고등학교엔 야구부가 유명하지요. 장충중을 나온 사람이 보자……. 아, 멀리 갈 거 없이 바로 제 매형이 장충중을 나왔네요. 부장님이 몇 년생이시지요?"

"62년생입니다."

"62년생, 범띠셨군요. 그럼 잘하면 저희 매형을 아시겠습니다."

"아, 매형이 범띠십니까?"

"매형은 67년 양띠이지만. 혹시 김도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모르겠네요."

"지금 작은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 하고 있습니다. 부장님 후배가 되겠네요. 말씀하실 때 억양이 살짝 다른 지방 같아서 고향을 여쭤봤습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부장님 아버님 때부터 계속 서울에서 사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친가가 서울 토박입니다."

"외가는 어디십니까?"

"외가는 충청도 집안이지요."

"충청도요, 부장님 억양에 섞인 말투가 충청도 사투리였나 봅니다. 충청도 어딥니까?"

"천안입니다."

"천안. 충남 천안. 좋은 동네죠. 그래도 천안은 사투리가 심하지 않은데 희한하네요. 그쪽 출신 중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가 천안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투리가 안 심했는데. 혹시 천안에 순천향병원 아십니까? 그 친구 집이 거기 근처랩니다. 천안 바로 옆엔 아산이라고 있습니다. 거기가 고향인 사람도 두 명 압니다. 예전에 저희랑 같이 일하던 곳 차장님이 아산생이라고요. 그 분은 거기서 나고 자라고 했다는데 서울 와서 오래 살아선진 몰라도 그냥 이렇게 얘기하면 억양이 전혀 충청도 같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명은 그 차장님의 아는 사람이었는데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어요. 고향 후배라나 했는데 그 사람도 말하는 것만 듣고선 서울 사람인가 싶었는데요."

"그랬군요."

"저는 경북 영주 출신입니다. 혹시 영주에 아는 사람 계십니까?"

"없습니다."

"영주는 작은 동네라 거기 출신이라면 웬만하면 서로 다 아는 사이라서요. 특히 저랑 비슷한 나이인 영주 출신이 있다면 열에 아홉은 분명 저와 아는 사이일 겁니다. 영주 주위엔 예천, 봉화, 안동이 있지요. 거기 출신들은 아는 분이 안 계십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예천, 봉화, 안동에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저희 회사에 곽차장이라고 있습니다. 알고보니까 그 분 사모님이 예천 출신이더라구요. 봉화엔 저희 아버님 친구분들이 사시는데 아직도 정정하신 분도 있고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안동은 전에 일하다가 밖에서 만나서 사귀게 된 되게 웃기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매제가 안동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사람을 잘 웃기는 지 모릅니다. 아주 뒤집어집니다."

"매제가요?"

"아뇨. 안동에서 온 건 제 친구 매제, 웃기는 건 제 친구.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얘기가 딴 길로 빠졌습니다."

"허허, 그렇군요."

"중학교는 장충, 고등학교는 오산, 이렇게 다니셨다고요. 좋은 학교 나오셨습니다. 예전에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주로 유아, 아동 서적 펴내는 데서 편집자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총각일 때 자취를 했는데 저는 그때 만났었죠. 그때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오산고를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은 제 어릴 적 불알친구의 사촌형님도 오산고 출신입니다. 저도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참 멋진 분입니다, 아주 호탕한 것이. 지금 뭐라더라 홈쇼핑 회사 있지 않습니까? 그쪽 일을 하신다고요."

"홈쇼핑 방송 제작 같은 걸 말씀하시나 보군요."

"그런 거 비슷한 건가 봅니다. 하여간 그 형님이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예전에 노래하던 그 가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뭐 그런 노래 있지 않았습니까? 그 가수랑 중학교 동창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개그맨이며 배우며 많이 안다더라구요. 드라마에 꼭 사채업자로 나오는 사람 있습니다. 뱃살은 이렇게 나와가지고 티비엔 어쩌다 가끔 나오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도 아는 사이라 하고. 그리고 가만 있자, 오산고 나온 사람이 또 있는데. 아… 그… 또 있습니다. 분명히 있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부장님, 그럼 대학은 어디 나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동대 나왔습니다."

"동대. 크으. 신경림 선생이 동대를 나오시지 않았습니까. 그 분이 동대 영문과를 나오신 걸로 압니다. 제가 그 분을 아주 좋아해서 예전에 책 참 많이 읽었습니다. 저기 정치인 중에 권노갑이라고 있지요, 그 사람도 동대를 나왔다고 들었는데 과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동국대 나온 분 많이 알지요. 일단 저희 큰아버님이 동대 나오셨습니다. 학교 선생 하시다가 지금은 퇴직하셨습니다. 지금 저희 회사에 박실장이라고 있습니다. 그 분도 제가 알기로 동대를 나오셨지요. 그러고 보니 아는 형님 조카도 이번에 동대에 입학했다던데. 부장님은 무슨 과 나오셨습니까?"

"국문괍니다."

"국문과. 그아도 국어 무슨 과던데. 아, 국어교육관가 봅니다. 동대에 국문과랑 국어교육과랑 따로 있지요? 그아는 국어교육괍니다. 부장님은 국문과시라고요. 저희 사무실에 국문과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연대 국민대 세종대 한성대 숙대. 아, 상명대도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일단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일 얘길… 어디 설명을 들어봅시다."

"아이고, 제가 아는 사람들 얘기가 나오다 보니 반가워서 그만. 먼저 이걸 한 번 보십쇼. 기획안입니다."

"어디 봅시다. 에……. 가만, 이 부분은 시에서 허가 받으려면 골치가 아프겠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바로 며칠 전에 기사가 났어요. 거기 정배씨, 그 기사 스크랩한 것 좀 가져와 봐. 이게 그냥 발표한 수준이 아니라, 시장이 아주 단호하게 잘라 말한 게 기사에 났어요."

"지금 우리 시장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요."

"시장 그 사람이 말입니다, 몰랐는데 알고 보니 제가 아는 형님의 친한 고등학교 선배의 은사님의 조카라던가 그렇더라구요."

"이대리 이제 그만 해. 아니 그게 무슨 아는 사이야?"

"예?"


"아까부터 참았는데 더는 못 참겠네. 그렇게 따지면 여기 앉아 있는 사람 모두 시장이랑 아는 사이가 된 거잖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면 우리 다 아는 사이지. 가서 시장한테 전해. 아는 사람 한꺼번에 일곱 명 더 생겼다고. 좋겠네 아주 그냥. 시장이 대통령이랑 알고 대통령이 각국 정상이랑 아니까 이제부터 거기랑도 다 아는 사이야. 그런 분한테 미안하지만 이거 다시 기획해 와.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해야겠어. 아니, 시장은 아는 사람이면서 이런 귀띔도 미리 안 해주고 뭐했대?"


영진공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