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13일
코폴라는 우디 앨런을 '진정한 작가'로서 노상 부러워했다는데, 이번 주 씨네21의 정성일은 그가 '세련된 취향을 가졌을지언정 진지한 작가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음, 정성일의 그 글을 대충 '건너뛰기 독서'를 하다가 이 구절을 보니, '작가영화'하면 뭔가 졸립고, 진지하고, 유머라곤 털끝만큼도 없고, 우울하고, 언제나 인상을 찌푸린 채 인간과 사회와 우주에 대해 고민을 늘어놓는 영화들이어야 할 것같다. 실제로 '진지함'이라는 게 촌스럽고 안쓰러운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 세상이니, 그런 '진지한' 작가영화들이 뭔가 '대단한 것'으로 격상시키는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또다시, 소위 '천박한 대중'과는 유리된 채 난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되는 것 같은걸. 나같은 '천박한 대중의 일원'은 가까이 하면 안 될 것같은... 그러니 잉그마르 베르이만에 대한 내 개인적 애정은 꽁꽁 숨겨두고, 우디 앨런을 작가영화에서 제해주신 그 센스에 오히려 고마워하도록 하자. 모든 작가(오퇴르 auteur)들이 스타와 작업하길 기피하지 않았으며 - 오히려 기회가 된다면 열렬히 그 기회를 이용했으며 - 때로 상업영화 씬에서의 성공을 간절히 원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사적으로 은밀히 기억할 일이다. 고다르라 해서 별로 예외였던 것같지도 않다. 하여간에.

오리지널 포스터는 좀더 어두운 분위기
난 풍만한 섹스어필로만 이미지가 굳어가는 듯한 스칼렛 요한슨을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덜렁이 아가씨로 그려준 우디 앨런 영감이 너무 고마웠다. 약간 탁한 그 특유의 목소리로 우디 앨런 식 대사들을 다다다다다 내뱉는 스칼렛 요한슨은 더할 나위없이 '우디 앨런식 여주인공'으로 보인다. <애니씽 엘즈>에서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던 크리스티나 리치와 달리, 스칼렛 요한슨은 왕년의 다이안 키튼이나 미아 패로만큼의 오오라엔 못 미쳐도, 그들의 그 지적인 분위기와 달리 약간 맹하면서도 더없는 사랑스러움으로 나름 새로운 우디 앨런식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매치 포인트> 이후 우디 앨런이 스칼렛 요한슨과 또 한편의 영화를 찍고있단 소식을 접했을 때만도 그저 '아, 요한슨이 이뻤나봐'하고 말았는데, <스쿠프>를 보고나니 그 양반이 왜 요한슨을 탐냈는지 알 것같다. 우디 앨런은 그녀의 영민한 재능과 아름다움을 높이 사고 자기 영화에 잘 어울릴 거라 예측했을 뿐 아니라, 언제나 자기 나이보다 대여섯 살에서 많게는 열 살 위의 여자를 연기하고 있는 이 조숙한 여배우에게 자기 나이에 맞는 '놀이로서의 연기'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음이 틀림없다. 영화 안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샌드라(혹은 제이드)를 바라보는 우디 앨런의 눈에 어찌나 애정과 기특함이 담뿍 들어있던지.

아아 너무 귀엽고 예쁜 요한슨 양. 휴보다는 우디와 더 잘 어울리는.
마지막 엔딩을 보며, 왠지 찡해져왔다. 샌드라를 자기자식처럼 그리 염려하고 아끼다가 결국 죽음을 맞고는, 저승사자의 배 안에서도 여전히 너스레를 떠는 그 코믹한 시드니의 에필로그가, 내겐 극중 인물인 시드니의 말로라기보다는, 우디 앨런 자신의 실제 심정을 토로하는 듯이 느껴졌다. 많은 감독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걸 보며 우디 앨런 역시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며 그 길을 생각해 보는 것이겠지. 하긴, 난 언제가 될지 몰라도(되도록이면 아주아주 나중이었으면 좋겠다) 우디 앨런이 실제로 죽는다면, 저승사자의 배 위에서도 여전히 코미디 영화의 디렉션을 하며 주절주절 수다를 늘어놓을 것같다. 바로 시드니처럼.
'산업인력관리공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븐 프리어즈 - 더 퀸> <영진공 71호> (0) | 2007.03.26 |
---|---|
<클린트 이스트우드 - 아버지의 깃발> <영진공 71호> (0) | 2007.03.24 |
은주의 이주기, 그래도 우린 걸어야겠지요 <영진공 70호> (0) | 2007.03.12 |
마티 영감님, 축하합니다. ^^ <영진공 70호> (0) | 2007.03.08 |
죠지 클루니, <굿나잇 앤 굿럭> (0) | 2007.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