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엔 『LA 컨피덴셜』과 『미스틱 리버』, 또 한 편엔 『페이백』과 『포스트맨』, 그 가운데쯤에 『기사 윌리엄』과 『맨 온 파이어』.
"브라이언 헬겔란드"는 사실 감독보다는 각본가로서 더 관심이 가고, 그건 단연코 『LA 컨피덴셜』과 『미스틱 리버』 때문입니다만, 이 사람은 작품의 수준 편차가 너무 심합니다.
『LA 컨피덴셜』과 『미스틱 리버』는 그보다 더 잘할 수 없는 최상의, 그리고 놀라운 각색이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맨』과 『페이백』의 존재는 이 사람의 능력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나쁘지 않은 흥행서적을 거둔 『기사 윌리엄』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영화고 저도 꽤 좋아하지만, 사실 '훌륭한' 각본이라고 말하긴 힘들죠. 사실 이렇게까지 심하게 편차가 나는 것도 쉽지 않은 재능일 겁니다만. 하여간, 형편없는 각본(그리고 연출)쪽 그룹에다 『신 이터』를 추가해야 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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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이터(Sin Eater)는 말그대로 죄를 먹는 자, 교회로부터 추방당한 이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의식을 치러주어 그들이 죽기 전 그들의 죄를 대신 먹어주는 자입니다.
교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치는 카톨릭(+개신교)에서 신 이터의 존재는 이단이자, 교회를 위협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 근사한 설정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상당히 헐렁해집니다. 플롯도 그렇지만 연출과 편집 자체가 어쩜 그렇게 헐렁하고 느슨한지. 전체적으로 영화는 상당히 B 분위기를 풍깁니다. 배우들도 좀 낯설죠.
하지만 이 영화가 돈을 별로 안 들인 게 아닙니다. 로마 로케이션에 성바오로 성당도 나오고요. B스런 화면에도 불구하고 『크로우』는 얼마나 광폭한 섹시 에너지로 넘치는 스타일리쉬한 화면이던가요. 이 영화도 그걸 하고 싶어합니다만, 그리고 일부는 성공합니다만, 문제는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일관성있는 스타일을 구축하지 못하고 파편화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신 이터를 접하면서 자신의 신앙체계에 의문을 증폭시키고, 가슴 속에 은밀한 사랑의 욕망을 억제하고 있으며, 교회의 독선과 냉혹함과 배타성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복잡다단한 갈등을 가진 신부라는 설정이 "설명"만 될 뿐 "표현"되지는 않는 단점입니다. "히스 레저"는 마치 나무토막 같아요.
정작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젊고 섹시한 육체를 가지고 있고, 知에 대한 갈망으로 눈을 빛내고, 세상의 모든 고뇌, 그리고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 사이에서 창백한 낯빛을 한 수단 차림의 젊은 신부만큼 강렬한 매력을 발할 수 있는 영화 주인공이 누가 있을까요.
막 『기사 윌리엄』을 끝내고 주가가 오르고 있던 "히스 레저"가 창백한 얼굴로 수단을 입은 모습은 확실히, 영화 맨 처음엔 꽤나 자극적입니다. 문제라면, 그가 이 영화에서 너무나 뻣뻣하게 연기를 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자신의 매력들마저 다 깎아먹고 있단 사실이지만요.
도대체가, 이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갈등 요소들이 대사로 이래저래 주절주절 읊어지긴 하는데, 그는 이 캐릭터의 내적인 갈등을 좀처럼 표현해주질 못합니다. 하긴, 각본 상태에서 이미 글러버린 것 같지만요. 외국의 어떤 리뷰어가 이 영화를 이렇게 평해놨더군요. "이 영화는 미스테리 없는 미스테리이고, 호러 없는 호러영화, 사랑 없는 멜러영화, 종교비판이 없는 종교비판 영화다." 그렇습니다. 설정만 그럴 듯할뿐 알맹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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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토리는 예정된 수순을 밟아갑니다. 심지어 악당이 밝혀지는 반전까지.
문제는, 훌륭한 감독들은 뻔한 플롯을 갖고도 엄청나게 강력한 영화를 만드는데, 그의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매치 포인트』만 해도, 그 줄거리를 말로 요약하고 나면 우리가 몇십년 동안 드라마로 영화로 줄창 보던 흔하디 흔한 치정극에 불과합니다만, 정작 영화는 얼마나 훌륭하던가요.
각본가 출신의 감독들의 문제는 대체로 이들이 화면의 구성에 서툴다는 점입니다.
단 5 분의 영상이 스크립트 열 페이지의 대사를 대신하며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전달해줄 수 있는지를 종종 까먹는 듯합니다. 언제나 '훌륭한 각본가' 출신의 감독들은 '설정은 좋았는데 영화가 망가져~!!'라는 비판을 듣곤 하는데, 헬겔란드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모든 설정을 다 1차원의 얄팍한 대사로 주절주절 설명해 버리는 이 영화를 보다보면, 헬겔란드의 각본가로서의 능력에도 의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영화 두 편이 모두 '원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상기돼 버리거든요.
그러나 영화팬의 비극이란, 때로 영화가 열라 후져도 그저 한 가지 마음에 드는 점 때문에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되곤 합니다. 이제 뭔가 나오려나, 기대만 하다가 영화가 끝났을 때의 그 허무함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설정이 워낙 마음에 들어서인지 저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 영화에 그럭저럭 관대하게 굴기로 합니다. (아쉬움은 크지만요.)
아무리 만담 콤비의 만담이 효과가 없고, 몇몇 씬은 씬 자체의 매력이 영화 전체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바보스럽게 되고, 캐릭터가 후지고, 배우들이 뻣뻣하다고 해도요.
모르겠습니다, 만약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봤다면 이 영화를 어느 정도 두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ps. 제가 신 이터로 생각하는 이미지와 이 영화에서 신 이터로 나오는 베노 퓌먼의 이미지가 너무 다릅니다. "베노 퓌먼"은 너무 매끈하고 젊어서, 응당한 냉소의 카리스마가 별로 나오질 않습니다. "섀닌 소새먼"은 아름답긴 하지만 왜 배우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은 'my way'가 너무 강해서 모든 캐릭터를 지극히 평면적으로 만들어 버리는데요. 『기사 윌리엄』이나 『40일낮, 40일밤』이나 이 영화나, 이 배우가 그려내는 캐릭터는 언제나 비슷비슷합니다.
ps2. 이 영화는 국내에서는 『씬』이란 제목으로 비디오로 나왔고(극장 개봉은 했다고는 하는데 걍 땜빵프로였던 것같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The Order』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습니다.
ps2. 이 영화는 국내에서는 『씬』이란 제목으로 비디오로 나왔고(극장 개봉은 했다고는 하는데 걍 땜빵프로였던 것같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The Order』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영진공 노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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